사쓰마번의 독자적인 외성(外城)
제도가 생겨난 역사적 배경
에도 시대 이전의 약 400년 동안의 가고시마는 시마즈(島津)라는 가문이 사쓰마국(薩摩國)과 오스미국(大隅國)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국 각지의 유력한 영주들은 빈번히 반란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당시 가고시마에는 천여 개에 가까운 산성이 존재하였습니다. 그 후, 16세기 말이 되면서 시마즈 가문은 지금의 미야자키현의 일부인 휴가국(日向國)까지 제압하며 삼국을 통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600년, 일본을 동서로 가르는 큰 전쟁(세키가하라 전투)이 발발하였고, 이 전투에서 동군이 승리하며 에도 막부가 성립하였습니다. 당시, 가고시마에서는 시마즈 가문이 번주가 되며, 사쓰마국 ‧ 오스미국 ‧ 휴가국을 통치하는 사쓰마번이 성립하였습니다. 에도 막부는 각지의 반란을 제압하고 막부의 통치력을 높이기 위해 각지의 산성을 폐지하였으며, 한 개의 번에 한 개의 성만을 둘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쓰마번은 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에 섰기 때문에 막부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사쓰마번은 유일한 성으로서 가고시마성을 축성함과 동시에 영내 각지에 있는 산성 기슭에 무사들을 모여 살게 하였고, 「후모토」라고 불리는 약 120여 곳의 방어 거점을 정비하여 독자적인 방어망을 구축하였습니다.